그냥 ‘배우’가 아닌 ‘여배우’에 대한 영화라는 게 기쁘다.
왠지 베일에 싸여 늘상 신비로워야만 할 것 같던 여배우들이
굴레 같은 강박관념을 어렵게 벗어 던지고 시원하게 속내를 내보였다는 자체가 좋았다.
<여배우들>은 여배우에 대한 세상의 선입견? 혹은 이미지를 과감하게 인정하고 시작한다.
누구보다 돋보이고 싶은 욕망, 예쁜 여배우에 대한 강한 질투심, 추켜 세워지고 대접 받고 싶은 욕망.
여배우들은 이런 이미지들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노골적으로 ‘이게 왜 어때서?’라고 묻는 듯 하다.
어쩌면 그들의 질투와 욕망은 여배우를 더 아름답고 매혹적으로 만드는 동력일지도 모른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여배우 6명이 화보 촬영으로 모인다는 설정은 그 자체로 미묘한 기 싸움을 보여주겠다는 의도를 짐작케 한다.
실상 여배우의 이미지란 것이 도도함, 질투심, 돋보이고 싶은 욕망 따위의 것이니 어쩌면 영화는 뻔한 내용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사실 <여배우들>의 플롯은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진짜 속마음이 아닐까?!’ 싶을 만큼 솔직한 대사와 감정연기 덕분에
어디까지가 가공된 대본인지 가늠할 수 없어 알쏭달쏭한 재미가 있다.
여배우라는 생물체를 조명하는 카메라의 시선에도 애정이 함뿍 담겨 있다.
그것이 관객에게도 그대로 옮아간 탓인지 모르지만,
여배우들의 다소 까다롭고 때로는 유치한 감정다툼도 꽤 흥미진진한 볼거리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는 출연한 여배우들의 퍼스낼리티가 크게 중요하지 않다.
고현정, 최지우, 이미숙, 윤여정, 김민희, 김옥빈 이라는 특정한 배우가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이 들어버린 원로 여배우, 나이 드는 것이 싫은 장년의 여배우, 화려한 전성기를 보낸 후 다시 컴백한 여배우,
인기 최정상의 젊은 톱스타, 크게 주목 받지 못하는 것도 서러운데 치고 올라오는 후배가 신경 쓰이는 젊은 여배우,
선배들의 기에 눌려 괜히 눈치 보는 신인 여배우.
각기 다른 위치의 여배우들이 만나 어떻게 관계를 엮어 가는지 들여다보는 데에 영화의 재미가 있다.
데뷔 시기로 줄 세울 수 있는 서열은 겉보기에 깍듯하고 엄격하지만
인기의 정도에 따라 천차만별 달라지는 주변의 대접 덕분에 언제 무너질 지 몰라 조마조마하고 위태롭다.
흡사 이 영화는 ‘여배우’라는 동물의 내면적인 습성을 목격할 수 있는 희귀한 자연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도 든다.
<여배우들>의 특별한 조우는 이들의 눈물과 하소연으로 끝이 난다.
속사포 같이 쏟아지는 사연들을 나누면서 여배우들은 함께 눈물 짓고 서로 위로한다.
눈 내리는 화이트 크리스마스에 스튜디오를 나서며 여배우들은 ‘우리 꼭 다시 만나자’며 서로의 어깨를 토닥거리지만,
나는 어쩐지 이들이 다시는 만나지 않을 것 같다.
‘여배우들’이니까.
비록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라 해도
대한민국에서 그들은 어쩔 수 없는 욕망을 가진 <여배우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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